작가노트 Artist's Note
우리가 금붕어처럼 금방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쁜 일도, 나를 괴롭게 하는 기억도 모두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말이죠.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소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금붕인(金-人)’은 바로 그런 소망을 담아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금붕어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금붕인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금붕어의 머리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행복에 집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인간의 몸은 여전히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무게와 책임을 상징합니다. 이 캐릭터는 현대인이 느끼는 고통과 상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금붕인을 둘러싼 세포 모양들은 우리의 다양한 감정을 시각화한 요소입니다. 각각의 세포는 우리가 느끼는 슬픔, 기쁨, 두려움, 희망과 같은 감정을 상징하며, 금붕인의 존재와 어우러져 감정의 복잡성을 표현합니다. 이 세포들은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움직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금붕인의 주변을 떠다니는 이 세포들은 고통과 치유가 공존하는 인간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금붕인을 통해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고, 잊혀지지 않는 과거의 상처에 매몰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시간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금붕인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상기시켜줍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금붕인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잠시나마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차게 걸어가는 금붕인을 보며 지나간 슬픔을 내려놓고, 앞으로의 걱정을 잠시 멈춘 채 현재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삶은 마치 금붕어의 수조처럼 제한된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금붕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작은 위로와 영감을 주길 바랍니다.
How nice it would be if we could forget as quickly as a goldfish? If I could forget all the bad things and bothersome memories, and live in the moment. This simple yet intense wish may be shared by many of us in modern times.
"Goldfish-man" is a character created with such a wish in mind. The goldfish with its human body is a symbolic being. The goldfish head symbolizes the desire to live focused on the emotions and happiness of the present moment, while the human body symbolizes the weight and responsibilities we bear in reality. This character metaphorically expresses the pain and wounds modern people feel, while conveying a message of healing and hope.
The cell shapes surrounding the goldfish-man visualize our diverse emotions. Each cell symbolizes feelings such as sadness, joy, fear, and hope, blending with the goldfish-man to express the complexity of our emotions. These cells are not merely decorative; they are linked to the movement of emotions within us. These cells, floating around the goldfish-man, visually depict human emotions where pain and healing coexist, helping the audience to reconsider their emotions.
The message I want to convey through the goldfish-man is simple but powerful: Instead of worrying about the future and dwelling on the past, we should cherish the present moment. The goldfish-man reminds us of the beauty and preciousness of the here and now. This is an increasingly important message in the modern world. We live in an information overload, constantly reflecting on the past and planning the future, making it difficult to fully appreciate the present moment.
I hope the audience viewing the goldfish-man will be able to immerse themselves in the present for a while. I hope they will let go of past sorrows by observing the goldfish-man, ceasing worry, and feeling the warmth and beauty of the present.
Life may be a limited space like a goldfish tank. But even within it, we can create sparkling moments. I hope the message from the goldfish-man will offer comfort and inspiration.
- Lee seung yeon
평론 Critic
투명하지만 다정한 세계를 위한 행위들
작가 이승연은 사회적이거나 개인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물리적인 혹은 감정적 폭력과 상처의 순간과 감정에 주목하고 자기-치유의 과정을 찾아 간다. 팝아트 스타일 작가들이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시그니처 캐릭터를 만드는 것처럼, 작가는 멍한 눈빛의 ‘금붕인’을 이라는 캐릭터를 만든다. 그렇게 금붕인들이 가득한 페인팅, 조각, 설치, 굿즈 등으로 ‘금붕인-유니버스’를 창조한다.
놀이 공원 마스코트 같은 3차원 인형탈이 아닌, 눈 맞춤이 불가능한 2차원 가면같은 금붕인의 얼굴 부분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금붕인의 행동(제스처)와 공간이다. 미디어나 인터넷의 사건, 사고나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서 가져온 동작들은 관계적 행위라기 보단, 폭력과 상처의 행동들이 나열되고 반복되면서 하나의 패턴처럼 보인다. 장소성의 맥락이 제거된 납작하고 진공같은 공간에 부유하듯 떠있거나, 시간성을 순간 캡쳐하듯 박제된 행동들이 반복적으로 채워지면서 폭력과 상처에 대한 감정과 인식의 거리감이 생긴다. 이런 순간, 우리는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는 방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행동 너머를 탐색하는 행위자가 될 것인가.
폭력과 상처를 퍼포먼스 하는 금붕인 행동들이 가득했던 공간은 점차 내면의 세계를 구성하는 비인간 요소들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금붕인’ 캐릭터가 ‘우매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인간중심적인 위치에서 사유한다면, 사물, 감정 등 비인간들이 채워지는 공간은 좀 더 상호-관계적인 사유에 대한 전환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마치 우리가 공간을 수학적인 3차원의 절대적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공간은 상대적이면서 관계적인 공간이듯이, 인간-관계에 집중된 폭력과 상처의 구조를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나 현대사회 문제로 전형적으로 접근하기 보단, 다층적이고 관계적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고 작은 사이즈나 재료들로 변주를 보이는 페인팅, 미니어처 조각, 공중에 매달린 모빌, 귀여운 굿즈들로 확장되는 ‘금붕인 유니버스’를 단순히 매체나 재료의 시도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다. 작가는 금붕어를 알레고리로 교훈적이고 전형적 우화로 관람객에게 설명하거나 ‘내가 경험해봤는데 말야’ 하며 인생을 가르치기보다,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와 상실을 드러내는 개인적 치유와 관계적 공감의 자리를 넓혀가려는 사회적 행위들을 조금씩 조금씩 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주 사적이고 감정적인 개인의 경험과 기억의 기록에서 시작했을 ‘금붕인’ 작업이 관계적인 ‘금붕인 유니버스’까지 가능했던 이유는 결코 쉽지 않았을 과거 속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흘려보내지 않고 들여다보고 곱씹었던 마음일 것이다. 작가는 ‘금붕인 유니버스’를 만들어낸 짧지 않은 시간과 과정에서 그런 투명하지만 오롯한 마음으로 스스로와 타인에게 다정한 치유를 건넬 수 용기와 의지를 지키고 키워왔다. 그래서 꽃길만 가득하기 어려운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에게 귀한 자산이며 비빌 언덕이기에 그 다음 세계를 위한 과정을 기대하게 된다.
- 채은영(독립기획자)